아프리카 대륙에서 최초로 공화국을 설립한 라이베리아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역사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 침략자들의 손에 끌려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선조 아프리칸부터 시작해 오랜 기간 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고 몇 세대가 흐른 뒤 그들은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와 라이베리아 공화국을 설립했습니다.
라이베리아의 뿌리
19세기 초 미국의 유명한 '미주리 협정'을 통해 미대륙의 북부 지역들은 노예제도를 없애기 위한 진보를 시작했습니다. 이 도전적인 사건의 일환으로 미국 식민지협회(ACS)는 북부대륙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예들에게 새로운 안식처를 제공하는 놀라운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드넓은 아프리카 해안선 중 한 곳을 골라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라이베리아는 1822년 몬로비아 지역의 작은 정착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ACS는 이 도전이 미국 노예제도에 대한 사회적, 도덕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투쟁으로 여겼고 해방된 노예들을 아프리카로 송환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ACS의 일부 구성원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그들의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고 자유와 자치권을 부여하는것을 목표로 했지만,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많은 구성원들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 간의 갈등을 가라앉히는 정치적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라이베리아에 도착한 정착민들은 미국의 전통과 사회를 기반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새로운 국가를 세우겠다는 엄청난 열정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민주주의에 기초한 사회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와, 미국 문화와 아프리카 문화의 융합이라는 는 두번째 목표를 세우고 세계의 집중을 받았습니다.
라이베리아를 설립하기 위한 과정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그들은 같은 지역에서 원래 생활하고 있던 토착 부족들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새로운 정착민들이 영토를 확장하고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은, 기존 토착민들의 토지와 자원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었고 지역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두 공동체의 충돌은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는데 큰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세대동안 노예제도라는 틀에 갇혀 지내온 새로운 정착민들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들의 꿈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정착민들은 이 지역에 적응하며 살아남았고 최초의 정착지였던 몬로비아는 그 규모가 점점 커지며 새로운 삶과 희망을 찾기 위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라이베리아의 건국은 자유와 인도주의적 이상, 자유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복합적으로 모여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인종, 출신, 성별에 관계없이 자유에 대한 이들의 열망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국가의 형성
1847년 라이베리아가 독립 선언을 하면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자유를 향한 열망에서 시작된 이 신생 국가는 새로운 도전의 길로 들어섰고, 이 길은 투쟁과 놀라운 순간들로 가득차게 됩니다.
새로운 정착민들과 토착 부족들의 갈등은 라이베리아의 발전에 큰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정착민들은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하고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 갈등은 폭력으로까지 번지며 장기간의 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정착민과 토착 공동체 사이의 의견차이를 좁히는 것은 라이베리아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였지만, 다양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아온 이들이 통합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초창기의 라이베리아는 지배 계급간 단합되지 못한 채 권력 투쟁과 정치적 분열로 뒤범벅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의 통치 구조를 구축하지 못한 채 서로의 이익을 위한 보이지 않는 싸움을 지속했습니다. 당시 라이베리아의 헌법은 미국식 통치 모델이 반영되었지만 이 지역의 사회, 문화적 환경에서는 이 헌법을 실행하는데 본질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도 라이베리아는 국가의 틀을 만들고 정체성과 통치 의식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미국 헌법을 모델로 하는 이 나라의 헌법은 민주주의 원칙과 개인의 권리를 바탕으로 나라를 운영하기위한 기관을 설립하고, 정부를 발전시켜 나아갔습니다. 사회 기반 시설, 교육 시설을 확장시키고 국가의 무역과 문화의 교류를 활성화시키긴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정착민들로 만들어진 이 나라는 해외의 이민자와 상인들을 초대하며 경제와 문화적 다양성을 유지했습니다.
혼란의 시대
19세기 후반의 라이베리아는 유럽열강의 아프리카 침탈과 내부적 갈등에 큰 영향을 받아 혼란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아프리카를 놓고 쟁탈중이던 유럽 국가들은 신생국인 라이베리아에 대한 통제와 영향력을 가지기 위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신생국이던 라이베리아는 외세의 압력을 받아야만 했고 유럽국가들은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간섭을 시작했습니다. 라이베리아가 통합되길 원치 않았던 유럽국가들은 라이베리아의 사회와 경제를 주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시기의 사회, 경제, 정치, 민족간의 갈등은 결국 내전으로 이어졌고 국가의 발전과 안정이 유지되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라이베리아는 시위, 봉기, 내전 등으로 국가의 안전을 끝없이 위협받아야만 했습니다.
현대의 라이베리아
라이베리아의 혼란스러웠던 과거는 큰 흔적을 남기고 혼란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라이베리아는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한 사회 기반 시설을 확립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현대의 라이베리아는 민주주의 제도 강화, 정치적 안정, 투명한 통치를 위한 도전을 진행 중입니다.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선거는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발전을 보여주며, 라이베리아에 맞게 법을 수정해 나가고, 인권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국제 사회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통산업 시대를 넘어 새로운 산업 시대로 전환하는 중입니다. 친환경 자원의 활용, 농업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외국인의 투자를 유치하고 새로운 저어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주 목표는 경제성장을 통해 국가 전체의 균형잡힌 발전입니다.
또한 시민들을 위해 의료수준을 향상하고 의료인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을 강화하며 의료분야에서 큰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의료인들의 목표는 더 많은 의료인을 배출하고, 질병 퇴치, 의료 수준 향상으로, 라이베리아 사람들의 건강을 최우선 과제로 삶고 있습니다.
라이베리아 정부는 지역 공동체의 교육 기회 확대, 학교 설립, 평등한 교육을 위해 많은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양성 평등 보장, 여성의 사회활동 장려, 취약계층 보호는 사회가 진보해 나가고 있는 증거이며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국가를 보여줍니다.
라이베리아는 민주주의를 향한 발전이라는, 굉장히 힘든 길 위를 걷고 있습니다.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지만,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그 길을 끝까지 걸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 : 위키미디어